영-시 겨울방학 워크숍 “Post, Poster, Posting” 후기
2024년을 시작하는 1월의 끄트머리, 영-시는 그래픽 디자인 듀오 신신(신동혁, 신해옥)과 일상의실천(권준호, 김어진)을 초대해 워크숍을 열었다. 1월 27일부터 28일까지는 신신이 포스터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포스터의 어제와 오늘을 심도 있게 파악하고 각자 ‘지금, 여기’에 알맞은 포스터를 만들어 봤다➀. 1월 29일은 일상의실천의 두 디자이너와 함께 일상의실천의 ‘실천’들을 모아보고,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리뷰하는 시간을 가졌다➁.
포스터(Poster)의 어원은 기둥을 뜻하는 영단어 포스트(Post)에서 유래한다. 그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둥이나 벽에 부착되어 시각적인 홍보를 위해 탄생한 매체가 바로 포스터다. 근 과거까지 사람들은 길을 지나면서 마주친 포스터에서 공연에 대한 소식이나 새롭게 문을 여는 매장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도 했다. 굳이 과거형으로 문장을 맺는 이유는 지나 세기에 시각 홍보물의 대표주자였던 포스터의 위상이 21세기에 들어서 흔들리다 못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의 발명과 개인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유추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직접 두 눈에 담는 것보다는 렌즈와 디스플레이를 통해 세상을 본다. 심지어 실제보다 디스플레이 너머를 진실로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하고 디자인을 공부하고 전공으로 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포스터라는 매체를 다시 바라보면 어떨까. 이번 워크숍에서는 이미 바뀌어버린 이미지 생산과 유통에 대한 패러다임에 맞춰 포스터라는 매체를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그 한계나 빈틈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 틈 속에서 찾은 가능성을(짧은 기간이지만) 결과물로 만들어 타인과 나누고 함께 의미를 찾아본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인쇄물의 형태로 생산 및 유통한 것이 지난 세기의 포스터라면 오늘날의 포스터는 어떤 형태일까.
-이미지를 유통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주제에 따라) 종이를 대신할 만한 매체나 재료가 있을까.
-포스터는 꼭 스스로 완결해야만 할까? 반대로 충분히 여러 역할을 겸할 수도 있을까?
-(역사적으로) 그동안 이에 대한 색다른 시도는 과연 없었을까?
포스터 디자인 워크숍에 앞서 신신이 학생들에게 전달한 워크숍의 개요 글이다. 신신과 일상의실천은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최전방에 있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들이다. 그들의 활동 무대와 클라이언트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실험적인 작업 성향과 끊임없는 시도들이 그래픽 디자인 시장에 그만큼 유효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포스터 디자인의 영역에서 두 그룹의 대조적인 접근 방식은 특히 흥미롭다. 신신은 콘셉트와 아이디어에 집중, 현실적 제약을 무너뜨리고 종이를 벗어난 포스터, 혹은 포스터의 역할을 초월한 포스터를 만들어 낸다. 개더링 플라워(Gathering Flowers) 프로젝트의 포스터는 포스터의 일반적 물성을 무너뜨리는 작업이었다. 포스터를 벽에 부착할 때와 빛이 투과하는 유리에 부착할 때, 그리고 포스터를 나누어 줄 때가 각각 다른 시각 경험을 선사한다. 꽃 포장지처럼 얇고 투과성이 높은 종이를 사용해서 앞면에는 글자만, 뒷면에는 이미지만 배치했다. 인쇄한 포스터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벽에 부착하면 명료한 글자들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이미지가 보인다. 이 포스터를 빛이 들어오는 유리에 부착하면 당연히 뒷면에 인쇄한 이미지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포스터를 부착하는 위치에 따라 다른 인상을 풍긴다. 이 포스터의 화룡점정은 포스터를 배부하는 방식이다. 포스터를 나눠줄 때는 종이를 거꾸로 된 고깔 모양으로 둘둘 말아서 손잡이 부분을 움켜쥐고 구겨서 건넨다. 일부러 포스터를 손상시켜 꽃 포장과 같은 모양으로 만든다. 뒷면에 꽃 이미지가 말린 종이 사이로 보여서, 영락없는 꽃다발이 된다. 포스터를 꽃다발처럼 거머쥔 관객은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완성된 시각, 촉각 경험을 기념품으로 가지고 간다.
신신의 작업이 포스터의 전통적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포스터의 개념을 확장시킨다면, 일상의실천의 포스터는 종이에 맺혀있는 정지된 상(像)에 움직임을 부여해 포스터를 다양한 방법으로 기능하게 만든다. 계획과 우연, 현실과 이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정지된 이미지와 움직이는(Moving) 이미지. 일상의실천은 서로 상반된 두 가지 개념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포스터는 벽에 부착하는 한 장의 이미지 속에 그래픽 디자이너의 의도와 그래픽 디자인을 도출한 프로세스를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일상의실천의 포스터는 포스터 속 그래픽을 구동시켜 의도나 프로세스를 직접 보여준다. 서사를 가진 그래픽 포스터가 아니라, 직접 서사를 보여주는 그래픽 디자인이다. 포스터에 사용한 기하학적 도형들과 클라이언트가 알아차리기 어려운 시각 언어들의 구성 원리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설명서를 포스터와 함께 읽는 기분이 든다. 2D와 3D를 오가는 화려한 그래픽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포스터의 물성은 대부분 평면에 머무른다. 신신의 포스터가 종이를 벗어나 3차원적 그래픽 경험을 선사한다면, 일상의실천의 포스터는 다양한 채널의 매체에 적용이 가능한 매체 지향적 그래픽 디자인이다. 종이는 물론이고, 소비자가 접근 가능한 다양한 디지털 매체들을 모두 아우르는 접근을 하기 때문에, 포스터의 본래 역할인 광고 효과가 극대화된다. 신신이 포스터 워크숍 개요 글에서 언급한 ‘바뀌어버린 이미지 생산과 유통의 패러다임’에 가장 현실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인 그룹이 바로 일상의실천이다.
우리는 컴퓨터의 보급, 스마트 기기의 등장, SNS의 보편화 등의 이유로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매체의 발전을 경험하고 있다. 앞서 개요 글에서 언급했듯, 전통적 포스터의 위상이 무너지고 있다. 그에 따라 그래픽 디자이너의 업무 또한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터 디자인 영역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매체가 예견했던 종이책 종말의 시기를 지나왔지 않은가. 그렇지만 포스터의 형태와 기능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겨울 워크숍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로 대조적으로 보이는 신신과 일상의실천의 포스터 작업들에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포스터의 역할과 기능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영-시의 겨울 워크숍은 포스터를 초월한 포스터, 포스터 디자인의 내일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워크숍 참여자들 또한 포스터 디자인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했다. 신신과 함께한 포스터 디자인 워크숍 결과물은 인스타그램 계정 @young.si.posting에서 확인할 수 있다.➂
➀, ➂
워크숍 첫째 날부터 둘째 날까지 신신과 함께한 포스터 워크숍은 신신의 작업을 함께 모아본 후 참여 인원들이 직접 자기만의 포스터를 만들어 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포스터를 만들기 위한 세 가지 전제 조건은 ‘어떻게 전달하고 유통할 것인가’와 ‘어디에 포스터를 부착할 것인가’를 스스로 고민해 보는 것과 반드시 ‘타인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워크숍 기간 동안 참여자들이 제작한 포스터는 한 번에 모아보기 용이한 인스타그램 계정(@young.si.posting)을 만들어 게시했다.
➁
워크숍 셋째 날 진행한 포트폴리오 리뷰는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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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 포스터 디자인 워크숍 결과물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글. 구민호 2024.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