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구김종이’ 대표 | 구민호

Q. 영-시인으로써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영남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05학번 구민호입니다.

Q.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대구 삼덕동에서 구김종이라는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김종이는 타이포그래피, 편집 디자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튜디오로, 주로 행사에 들어가는 홍보물이나 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또, Breakfastclub Press라는 그림책, 만화책 전문 출판사 일을 조금씩 돕고 있으며 영남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Q. 하루 일과를 소개해 주세요!

조금 느슨하게 일과를 시작합니다. 작업실을 공유하는 Breakfastclub Press 대표, 미늉킴 작가가 출근하면 함께 커피를 마십니다. 사무실에서 마실 때도 있고, 주변의 카페에 갈 때도 있습니다. 사무실이 위치한 삼덕동이 좋은 카페가 많기로 유명한데 카페들이 보통 12시쯤에 문을 열어서, 아침에 문 연 카페를 찾아다니는 게 일상입니다.

일단 근무가 시작되면 각자 자기 일을 하는데, 정해진 일 없이 항상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일과가 매번 같지는 않습니다. 혼자 일을 하니까, 업무 전화나 미팅으로 낮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또, 인쇄나 제작도 신경을 써야 해서 늘 작업할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야근으로 이어지는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Q. 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를 소개해 주세요!

첫 번째는 디자이너로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디자인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Kinky-Firm이라는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작업이 끝날 때 대표님이 항상 “민호씨, 이제 이거 끝? 최선이죠?”라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Kinky-Firm은 디자이너 한 명에게 프로젝트 하나를 전담시키는 구조로 운영되었는데, 최선이 아니면 일을 끝내지 못합니다. 디자이너가 최선이 아니다, 더 해보고 싶다고 하면 대표님이 거래처에 양해를 구하고 시간을 벌어 옵니다. 그래도 마감이라는 게 마지노선이 있기에 그럴 때는 “아쉽다. 그래도 이건 여기까지.”라고 끝을 맺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작업은 마음에 사무치게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뽑아내는 게 가장 큰 과제입니다. 어떤 일이든 구김종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 일은 ‘외주 일’이나 ‘거래처 일’이 아니라 ‘제 일’이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작업을 할 때 보통은 시안을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준다”를 전제로 하고 있고, 그 ‘최선’이 여러 개인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에 ‘최종 작업물은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대상의 외형을 피상적으로 예쁘게 꾸며주기만 하는 일을 피하는 것입니다.주어진 일을 디자이너로서 분석하고 해석하며, 의뢰인이 전하려는 메시지에 제 ‘관점’을 덧씌우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서 될 수 있으면 꼭 그렇게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그게 지금 시대가 그래픽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역할이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어떤 게 있으세요?

〈삼덕체〉라는 글자를 제작한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삼덕체〉는 2009년부터 시작해서 2018년에 마무리된 라틴 폰트입니다. 처음에는 폰트를 만들겠다는 생각 없이, 글자와 비슷한 모양을 사진으로 수집하는 행위에서 시작됐습니다.

구민호 디자이너가 수집한 도시 풍경 사진과 <삼덕체>

영남대학교 시각디자인전공 학사과정 재학 중에 정재완 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 그중에 거리 글자 풍경을 수집하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영남대학교가 대구 근교에 있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그전까지는 ‘대구'가 그래픽 디자이너가 관찰하고 기록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많은 학생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서울이라는 무대로 가기 위한 통과 지점으로만 대구를 바라봤기 때문에 대구 시각 문화나 도시가 가진 매력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정재완 교수님 수업을 듣게 됐고, 대구 곳곳에 있는 명소들, 골목들을 걸으면서 도시 풍경을 ‘글자'라는 관점으로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인상적인 수업이었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종종 거주하는 도시 풍경을 같은 관점으로 남겨 놓게 됐고, 그렇게 10년을 기록했습니다.

<삼덕체>의 제작 과정

2016년 독일 오펜바흐 조형대학에서 타입 디자이너 요하네스 바이어가 진행하는 특강을 들을 당시, 라틴 폰트를 한 벌 만드는 게 그 특강의 목표였습니다. 이미 10년을 수집한 대단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다른 모티브는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할 때 잠깐 만들었던 한글 레터링과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이걸로 폰트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을 때는 ‘라틴 문자를 폰트로 만드는 수업이다. 이걸로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시며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글자 꼴을 손으로 스케치하는 단계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10년간 기록한 사진들을 토대로 글자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도 몇 번을 수정한 끝에 〈삼덕체〉의 레귤러와 볼드 폰트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리 풍경 중, 건축물들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에 ‘건축적인’으로 해석되는 독일어 형용사 ‘Architectural(아르히텍투얼)’을 이름으로 붙였다가, 후에 2009년 수업을 처음 시작한 장소인 삼덕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삼덕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Q. 요즘 가장 좋은 순간과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인가요?

개인적으로는 대구에 스튜디오를 열기 위해서 10년 정도,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준비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구에서 작업을 하는 기획자나 작업자들을 만나는 일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최근에 ‘홈이' 프로젝트를 빌미로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하는데, 이런 일련의 일들이 제게는 아주 큰 ‘힐링'입니다.

힘든 순간은 역시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문화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괴수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임금으로 더 많은 일을 소화할 때, 그런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조명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스쳐 지나가는 많은 작업물들을 보면서 회의감을 느낄 때입니다. 또, 무엇보다 제가 하는 디자인 일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 마무리 단계에 있는 ‘처리해야 할 일'로 치부되어서 빨리빨리 일을 넘겨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저는 혼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분들이 바라는 그런 속도로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사람을 고용할 만큼 임금이 높지도 않습니다. 많은 분이 디자이너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경험이 부족해서 늘 하던 대로 무리한 일정과 무리한 노동을 강제합니다. 그러한 부분들이 대구에서 일하는 고충이라 생각합니다.

Q. 같은 분야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타이포그래피, 편집디자인, 북 디자인 그리고 그와 관련된 많은 인쇄물 관련 일들은 시각디자인에 있어서 정말 꽃 같은 분야입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대신 경제적 문제와 부딪힐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꽃 같네’라는 말이 튀어나올지도 몰라요. 하지만 역시,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다른 건 생각 못 할 정도로 아름다운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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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영시 2022.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