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시작된 예술 | 《REAL BANKSY: Banksy is NOWHERE》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로버트 뱅크시(Robert Banksy)는 모든 인적 사항을 공개하지 않은 채 활동하는 영국 출신의 예술가이다. 그는 1990년 후반 주목 받지 못하던 그래피티 아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후 꾸준하게 사회의 병리적 문제들을 고발하는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를 칭하는 수식어와 별명은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주로 ‘거리의 예술가’ 또는 평화를 위한 ‘예술계의 테러리스트’ 라고 불린다.
리얼 뱅크시 전시는 그라운드 서울에서 2024년 5월 10일부터 10월 20일까지 뱅크시가 다루는 굵직한 주제를 바탕으로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뱅크시가 설립한 인증 기관인 ‘페스트컨트롤’ 정식 승인 작품 29점과 영상 작품을 포함한 약 130점의 국내 최대 규모 전시로 그의 작품이 가진 내면을 들여보다 보면 자본주의와 영합하지 않는 면과 그가 예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담겨있다. 그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이슈들과 현상들을 희화화하는 것이 아닌 의미를 전달하고 전달받는 것에 초점을 두어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면 뱅크시의 작품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Where is Real Banksy? (Banksy was here)
첫 번째 섹션인 ‘Banksy was here’ 에서는 뱅크시의 작업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동시대 예술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초점 잡아 전개된다. 팔레스타인 장벽에서의 활동 기록과 전쟁 그리고 난민 문제와 같은 자본주의에 대한 제도 비판 예술을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 장벽에서 그의 행보는 〈Love is in the air (Flower Thrower)〉 작품을 통해 소개된다. 〈Flower Thrower (꽃을 던지는 사람)〉 의 장면은 프랑스의 68 파리 혁명의 시위대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작업의 초기 버전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뱅크시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발전시켰다. 이 작품의 꽃다발은 평화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삶과 사랑을 상징하기도 하며 오래된 분쟁으로 잃은 생명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해당 작품은 우리에게 마치 무기를 던지는 듯한 남자의 손에 꽃다발을 대체하여 평화와 자유를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계속해서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전쟁에 대한 제도 비판 예술은 대표적으로 〈Flying Copper〉 작품을 통해 알아볼 수 있었다. 작품 속에는 진압복을 갖춰 입고서는 상냥한 스마일 얼굴을 한 경찰이 등장한다. 1990년대 애시드 하우스 뮤직 신과 연관된 모티브이기도 한 스마일 얼굴은 행복과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지만 중무장한 경찰의 기관총과 완전한 대비를 이룬다. 경찰의 날개는 천사 같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장이라도 겨눌 수 있는 기관총은 갈수록 폭력이 흔해지고 체계화 되어가는 분위기를 의미한다. 〈Flying Copper〉 작품은 평화를 뜻하는 수호자와 위협의 이중성을 포착하여 우리로 하여금 권위와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을 회의하게 할 수 있으며 친근한 얼굴 뒤에 억압과 겁박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여기서 여러분은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작품 〈Dismaland〉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초점 잡아 보여준다. 실제로 Dismaland는 뱅크시와 58명의 예술가가 함께 만든 곳으로 디즈니랜드와 닮은 것 같으면서도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안티테제이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폐허가 된 높은 성은 동심의 상징인 디즈니랜드를 평범하게 떠올리는 환상의 나라 혹은 동화 속 아름다운 성이 아닌 그와 대비되게 변형시켜 자본주의의 모순을 꼬집었다. 더불어 디즈멀랜드의 가장 윗부분에서 내려다보는 검은 후드를 쓴 남성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일반적으로 놀이동산이 주장하는 ‘꿈과 희망’ 만이 가득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현실의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
Girl with Balloon
두 번째 섹션에서는 자본시장에 침식당하는 예술의 가치와 정신을 초점 잡아 보여준다. ‘자본’은 우리의 아름다움이라는 자리를 대체하고 있으며 이것은 뱅크시의 영향력을 그의 최고 낙찰가를 말하거나 작품의 가치를 비용으로 표현할 때도 해당할 수 있다. 우리는 과연 순수한 마음으로 예술을 바라보고 있으며 고유한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두 번째 섹션의 홀을 들어섰을 때는 〈Girl with Balloon〉 작품이 낙찰 직후 파쇄되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당 작품은 우리가 갖고 태어난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나타내고 있지만 뱅크시는 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소녀와 풍선이 가진 관계성에 대해 누군가는 풍선을 놓친 것이라고 해석하며 누군가는 풍선을 잡으려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관객이 해석하는 이미지와 상황에 따라 순수함을 잃고 있거나 손에 없는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는 것과 같이 뱅크시는 개인의 관점을 끄집어내려 했을 것이다. 2019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낙찰 직후 액자 속에 감추어진 파쇄기가 작동한 퍼포먼스는 예술이라는 가치관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자본주의에 침식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쥐’는 뱅크시의 초기 작품 속에서 자주 쓰이는 대상이며 그의 무대인 거리 곳곳이나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REAL BAKSY》 전시장 곳곳에서도 쥐가 등장하여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쥐’는 사학의 아이콘이자 거리 미술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존중받지 못하거나 불의와 부당함을 마주하는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작품 〈Because I'm worthless〉 은 문구 피켓을 들고 있는 쥐를 보여준다. 작품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쥐의 목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목걸이가 걸어져 있지만 피켓의 문구 속에는 ‘나는 쓸모없는 존재니까’ 와 같은 대비되는 메세지가 적혀있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선 전쟁에 뛰어든 모습을 하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만한 쥐를 내세워 그는 끝나지 않을 예술적 자유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Real Banksy, Real Me
한시적으로 존재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세 번째 섹션에서는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사회 지도층의 권위와 과도한 통제를 저항하고 불편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성찰을 요구한다. 그는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다양한 존재들이 진정으로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거나 과거의 부정적인 관습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작품을 통해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세계의 거대한 범죄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규율을 따르는 데에 있다. 명령에 따라 폭탄을 투하하고 마을 주민을 학살하는 사람이 곧 거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I fought the law〉 는 언뜻 보면 유머러스한 반권위주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본다면 다양한 복잡성이 드러난다. 해당 작품은 1981년 3월 30일 존 힝클리의 미국 대통령 암살 시도를 담은 영화에서 따온 것으로 작품 속 남자는 부상을 입은 채 CIA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쓰러진 남자의 손에는 총이 아닌 붓이 들려있다. 과연 붓이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무기라고는 붓 밖에 들고 있지 않지만, 법의 눈앞에서는 거리 예술가가 심각한 범죄자로 여겨진다는 것을 그려내며 뱅크시는 폭력에 맞서는 자신의 모습을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Banksy is now here
‘행동하라 지금보다 나아지도록’.
마지막 섹션에서는 뱅크시가 에술계뿐만 아니라 자신에 작품에 가지는 생각과 우리의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초점 잡아 전개된다. 그는 자기 작품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따라오는 돈은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문제점이라고 말하지만, 이 문제를 소외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을 해결책으로 삼아 실천한다.
뱅크시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행동하는 증거는 첫 번째로 〈Game Changer〉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Game Changer〉는 전 세계의 팬데믹 상황이던 2020년에 영국의 사우샘프턴 병원에 기증되었다. 작품 속에는 슈퍼 영웅을 가지고 노는 소년을 중심으로 휴지통 안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트맨, 스파이더맨이 담겨있으며 소년의 손에 들린 장난감은 망토를 두른 의료인의 모습을 한 슈퍼 영웅이었다. 일반적인 액션 히어로가 아닌 새로운 슈퍼 히어로인 의료인을 팬데믹이라는 전쟁에서 열심히 맞서 싸우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제공하는 액션 히어로가 과연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 삶에서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발걸음을 옮기면 두 번째 증거이자 마지막 영상물인 〈God bless Birmingham〉 을 발견할 수 있다. 영상 속 주인공은 거리의 노숙인으로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신 후 짐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한다. 벤치에서 잠이 든 노숙인을 줌아웃시킨 뒤 뱅크시는 노숙인이 누운 벤치를 끌고 날아가려 하는 두 마리의 순록을 그려 마치 그를 마차에 누운 산타처럼 보이게 하였다. 대개의 사람들은 거리의 노숙인을 꺼리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면 그는 산타클로스도, 슈퍼 영웅도 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걸리지 않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죠. 밤에 불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많이 재미있어요. 그리고 작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고, 사람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이고 났을 때의 아름다운 시간이 있습니다. 정말 기분 좋죠. 그래서 저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 느낌을 위해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뱅크시는 작품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지배 구조를 보여준다. 전쟁, 경제 위기, 난민, 노동 착취 등과 같은 사회 문제는 끊이지 않고 반복되지만 우리는 대부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뱅크시는 이러한 우리의 모습과 사회 역동을 예술을 통해 날카롭게 찌르며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 거리를 성찰의 공간으로 바꾸고 영혼에 자국을 남김으로써 우리에게 사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남겨주는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새롭게 해석되고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변화된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REAL BANKSY: Banksy is NOWHERE》
2024.05.10. - 2024.10.20.
장소: 그라운드 서울(ground seoul),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26
운영시간: 월-일, 10:00 - 19:00
이미지 출처
《REAL BANKSY: Banksy is NOWHERE》 전시회 포스터 ⓒ그라운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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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현서 2024.11.27.